인공지능(AI)과 플랫폼 자본주의가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한 노동계급이 탄생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의 확산과 AI 기술의 발전이 노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알고리즘의 통제 하에 새로이 등장한 계급, 디지털 프레카리아트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프레카리아트란 _뜻과 개념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체계화한 개념으로,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precario, 불안정한)'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무산계급)'를 결합한 신조어다.
이 개념은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노동운동에서 처음 등장했으나, 스탠딩의 2011년 저서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을 통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스탠딩은 프레카리아트를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 상황에 놓인 계급"으로 정의하며, 이들이 전통적인 고용보장, 소득보장, 대표성 보장 등을 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과 세계화, 자동화의 영향으로 이 계급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자본주의와 플랫폼 경제
플랫폼 자본주의의 등장
닉 스르니체크(Nick Srnicek)는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현대 디지털 경제의 핵심을 플랫폼을 통한 데이터 추출과 가치 생산으로 설명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서로 다른 그룹을 연결하면서 모든 상호작용을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를 추출하는 위치에 자리잡는다.
이러한 플랫폼 모델은 기본적으로 "데이터에 대한 탐욕스러운 욕망"에 기반하며, 이는 종종 프라이버시와 노동자 권리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우버, 배달의민족,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들이 이러한 모델을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가치를 추출한다.
알고리즘 관리와 디지털 통제
현대 플랫폼 노동의 핵심 특징은 알고리즘에 의한 관리와 통제다.
중국의 배달 라이더 연구에 따르면, 플랫폼 시스템(소프트웨어)과 소비자가 플랫폼 회사(관리자)를 대신해 배달 라이더를 관리한다. 이는 물리적 기계와 컴퓨터 장비에서 가상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로의 통제 방식 변화를 의미한다.
알고리즘 관리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기술을 통한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과 노동자 감시, 실시간 반응성, 자동화 또는 반자동화된 의사결정, 상대적으로 단순한 지표에 기반한 AI 시스템의 성과 평가, 그리고 노동자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넛지"와 처벌의 사용이다.
디지털 프레카리아트의 실상과 특징

AI 시대의 새로운 프레카리아트
AI 시대의 프레카리아트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AI에 의해 대체될 위험이 있는 노동자들이고, 두 번째는 AI 플랫폼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이다.
과거에는 주로 단순 반복적인 육체 노동이 자동화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회계사, 변호사, 의사, 교사, 심지어 예술가와 같은 고도의 지식 노동자들도 AI에 의해 일부 업무가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루프 속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in-the-Loop)"로 개념화했다. AI가 대량실업을 가져오기보다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데이터 라벨링, 콘텐츠 조정, 트렌드 토픽 관리 등의 업무에서 인간 노동자들이 AI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플랫폼 노동의 구조적 문제
플랫폼 노동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의 은밀한 지휘 감독 하에 놓여있다.
고용, 보수, 평가, 업무 배분의 뒤에는 AI가 보이지 않게 작동하며, 이는 더욱 개입하기 어려운 교묘한 노동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용역 위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 또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최저임금과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다. 한국 서비스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임금은 줄어들고 노동시간은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프레카리아트의 건강과 복지 문제
플랫폼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프레카리아트보다 높은 위험에 직면한다.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정신적 과부하, 자가 부과적 압박, 기술 불안과 기술 중독 등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전 세계 노동력의 1-3%가 현재 이러한 건강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유럽에서는 약 2,800만 명, 2025년에는 4,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더 높은 근골격계 통증, 눈의 피로, 두통, 그리고 더 나쁜 정신 건강을 경험한다. 임금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플랫폼 노동자 10명 중 8명이 빈곤선 이하의 수입을 얻고 있다.
학술적 관점에서 본 디지털 노동 이론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크리스챤 푹스(Christian Fuchs)는 『디지털 노동과 칼 마르크스』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생산과 사용이 다양한 형태의 착취에 내재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정보 사회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계급 사회라는 것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세계 최대의 광고 대행사로서,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광고 공간을 판매하며, 이 과정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사용자들을 착취한다.
비물질 노동 이론
마우리치오 라자라토(Maurizio Lazzarato)의 비물질 노동(Immaterial Labour) 개념은 디지털 프레카리아트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비물질 노동은 상품의 정보적, 문화적 내용을 생산하는 노동으로 정의되며, 사이버네틱스와 컴퓨터 제어 기술이 핵심 역할을 한다.
티지아나 테라노바(Tiziana Terranova)는 "자유 노동(Free Labour)" 개념을 통해 디지털 경제에서 사용자의 무급 노동이 경제적 가치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60-70년대 "노동 거부"의 결과이자 표현과 생산에 대한 주관적 욕구와 욕망의 투자가 후기 포드주의 경제의 엔진으로 전환된 것이다.
감시 자본주의와 행동 수정의 메커니즘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의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 이론은 디지털 프레카리아트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설명한다. 감시 자본주의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예측이 매매되는 "행동 미래 시장"에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하며,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을 새로운 "행동 수정 수단"에 종속시킨다.
이는 전체주의적인 빅브라더 국가에서 편재하는 디지털 아키텍처인 "빅 아더(Big Other)"로의 위협 전환을 의미한다. 민주적 감시에서 벗어난 극도의 지식 집중으로 특징지어지는 전례 없는 권력의 도가니가 형성되고 있다.
전 세계적 대응과 정책적 노력
유럽의 플랫폼 노동자 보호 정책
유럽연합은 플랫폼 노동자 지침(Platform Workers Directive, PWD)을 통해 회원국 전반에 걸쳐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 지침은 특정 상황에서의 고용 지위 추정과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권리를 포함한다. 자동화된 의사결정의 중요한 요소를 사용하여 업무가 할당되는 모든 유형의 노동자를 포괄할 만큼 광범위한 정의를 사용한다.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시스템
가이 스탠딩은 프레카리아트 문제의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정기적인 현금 이전으로, 사회의 집단적 부에서 나오는 사회적 배당금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단순한 빈곤 대책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경제적 권리로서 "공화주의적 자유"를 증진시키는 도구다.
호주의 연구에 따르면,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그룹에서 나타난다.
- 더 큰 '물질적' 불안정성에 직면한 젊은층, 저소득층, 실업자, 교외 임차인들과
- 녹색-좌파 유권자와 재분배 가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탈물질주의적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아시아의 긱 이코노미 정책
인도 정부는 긱 워커들을 위한 포괄적인 사회보장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 건강보험과 연금 제도, 생명보험과 장애 보험, 산업재해보험, 모성급여, 노후보장을 위한 연금 계획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복지 제도의 재원 마련을 위해 사회보장기금이 설립될 예정이며, 긱 및 플랫폼 기반 회사들의 거래에 대한 세금을 통해 지원될 수 있다.
미래 전망과 대안적 모델
기술적 해결책과 인간-AI 협력
IBM의 분석에 따르면, AI의 직장 통합은 세대적 기술 변화 중 하나를 나타낸다. AI 도구와 자동화 기술이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함에 따라, 인간 노동자들은 반복적인 활동에서 해방되어 인간의 전문성이 가장 가치를 더하는 영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창조에서 큐레이션과 지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비판적 평가, 맥락적 이해, AI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안내하는 능력에 더 큰 중점을 둔다.
디지털 노동의 해방적 가능성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과학기술이 노동계급에게 심각한 고난을 가하지만, 동시에 인간 해방의 도구 역할을 하며 자유로운 사회 설립에 도움이 되는 조건을 만들어낸다.디지털 기술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서 출발하여 디지털 노동 법적 규범과 데이터 재산 분배 시스템을 설정하고 개선하는 것이 신뢰할 만한 방법이다.
마무리
살펴보았듯 AI와 플랫폼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프레카리아트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기술 발전이 모든 사람의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답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디지털 경제의 이익을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인공지능 - 인간의 관계에서 거대한 위협, 디지털 프레카리아트의 현실을 직시하고, 기술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프레카리아트는 단순한 기술 발전의 부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플랫폼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만들어낸 새로운 계급이라는 점이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노동권 보장,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디지털 사회를 재구성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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